이사 가는 날 [한경록의 캡틴락 항해일지]
이사 가는 날 [한경록의 캡틴락 항해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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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잉넛’ 기타리스트 이상면이 먼저 읽고 그리다.
한경록 | 밴드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얼마 전 12년 동안 살던 정들었던 집을 떠나 이사를 했다. 서울 마포구 홍대 번화가에서 살짝 거리가 있는 나름 한적하고 평온한 장소였다. 건물 주변의 220년 정도 된 회화나무 보호수가 초록 나무 대문처럼 어두운 기운을 막아주는 것 같았다. 지하철역에서 집까지의 길은 스키장 중상급자 코스 같은 경사 언덕을 지나가야 하는데, 내게는 정열적인 딸기색 50㏄ 오토바이가 있어 기동성 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다.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의 5층 꼭대기에 살았기 때문에 따로 하체 운동을 할 필요은행정부대출
도 없었다…고 쿨하게 말하고 싶지만 무더운 여름날 1층까지 내려왔는데 오토바이 키를 안 챙겼을 때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다시 올라갔다 오면 도합 15층을 이동한 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번도 운 적은 없다. 나도 이제 어른이니까.
신나고도 고단한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발코니에 보이는 은행나무가 “미남! 수고했어”하고 나를 반주택금융공사 보금자리론
겨준다. 그간 원룸과 오피스텔에서만 산 나에게 처음으로 생긴, 초록 은행나무가 있는 발코니라는 공간은 꽤 매력적이었다. 화분을 놓고, 덩굴장미도 키워보고, 작은 텃밭도 가꾸었다. 방울토마토도 심었는데, 탐스럽게 자라나면 직박구리 녀석이 와서 훔쳐 먹었다. 어쭈구리 하며 어이없어하다가도 귀여워서 봐줬다. 처음으로 정원을 가꿀 때, 베르디의 오페라를 들었기 때개인파산대출
문에 ‘베르디 정원’이라고 이름 붙여 주었다.
‘초록지붕의 빨간 머리 앤’처럼, 나도 나만의 낭만적인 지붕이 필요했다. 그래서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처럼 발코니에 노란 차양을 설치하기로 했다. 여름 내내 정원을 가꾸고, 공연을 마치고 뒤풀이로 한잔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의 일이다. 파란 옷을 입은 작은 소녀가 발코니 난간에 기댄 채 초연말정산급식비
록 은행나무를 노랗게 칠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푸른 밤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홍대 가을의 시작은 여기서부터였던 것 같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면 초록 은행잎이 노란 차양 색깔을 닮아갔다.
돌이켜보니 나의 30대 시절을 오롯이 함께한 공간이었다. 20대 때 집은 잠시 잠만 자는 공간이었다. 맨날 친구들 만나러 싸돌아다녔기 때문한국새희망네트워크
에, 집을 꾸미거나 집에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었다. 집안에 개미 떼가 줄을 지어 이동해도 그러려니 하고 같이 살았다. 하지만 30대가 된 나에게 집은 퇴근 후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는 존재이자, 아침에 내린 커피 향이 머무르는 휴식의 공간이 되었다.
한자리에 오랫동안 머물러있던 물건들을 정리하다 보니, 추억들이 먼지처럼 피어났다. 각종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연봉
영화, 공연, 전시의 팸플릿들, 선물받은 작은 인형과 액세서리들, 여행할 때마다 모아 두었던 냉장고 자석들, 다 낡아 버린 무대 의상들, 그리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청춘의 여름날들…. 차곡차곡 모아온 편지와 사진은 예쁜 상자에 곱게 넣어 두었지만, 이제 정들었던 물건들을 놓아주어야만 했다. 이사가 결정되고 한달 정도 낡은 짐을 정리하는데, 상처에 빨간 소현대자동차 노조
독약을 바른 것처럼 쓰라리면서도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엉엉 울어버리고 난 뒤 느끼는 카타르시스 같았다.
이사 올 때 은행나무의 키가 내가 사는 5층 집 높이와 비슷했는데, 이제는 은행나무가 훨씬 더 커 버렸다. 그리고 나도 뭔가 훌쩍 커 버린 느낌이다. 올 초, 여름이 오기 전에 에어컨 점검을 맡기려고 알아보던 중 불현듯 이제 떠나야 할퀸소액
것 같은 느낌을 직감했다. 분갈이하듯 이젠 새로운 토양이 필요했다. 단순히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으로 이사 가려고 한다기보다는 새로운 인생의 2막을 시작할 필요를 느꼈다. 익숙한 것에서 멀어지고, 친한 친구들도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으로 떠나기로 했다. 외로움을 지독히도 못 견디던 내가 왜 이렇게 정든 동네를 떠나려고 했는지, 알 것 같기도 모를 것 같기도은행 업무 분야
하다.
초록 은행나무가 노란 차양을 닮아가는 것을 12번이나 봐왔던 나날들. 갑자기 겨울날 새벽녘에 일본 공연하러 일찍 집에서 나섰는데, 3층 계단에서 죽은 듯 쓰러져 있던 모 방송국의 라디오 피디가 생각난다. 아무래도 만취 상태로 집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사모님께서 문을 안 열어주셨던 것이 아니었을까? 깨워도 안 일어나고, 벨을 눌러여자자연산
도 반응이 없어서 비행기 놓칠까 봐 그냥 두고 왔던 기억이 난다. 분위기 있게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꼭 이런 추억들이 떠오른다.
나를 룩셈부르크 아저씨라고 불렀다던 8살짜리 꼬마가 이제는 20살이 되었다고 하며, 이웃분께서 작별의 선물로 레몬청을 선물로 주셨다. 이제 꼬마 신사도 크고 은행나무도 크고 나도 커 버렸다. 이제 새로운 공간에서 다시 커피 향을 내려 보리라!
안녕, 초록 은행나무야!